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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1-09-09 07:45 수정일: 11-09-09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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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수도 있지 (2011년 4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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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admin
 조회 : 7,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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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여 전 용건이 있어 어느 목사님에게 전화를 하였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내 쪽에 비해 목소리도 즐거워 보이지 않고 아주 짧은 단답형 대답만 하시는 바람에 무척 당황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얼마 뒤 마침 용건이 해결되어 다시 전화를 했는데 역시 힘없는 목소리에 무성의하게 전화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한테 뭐 섭섭한 것이 있나? 안 좋은 일이 있나? 무슨 전화를 이렇게 받지?
얼마 전 목회자모임이 있어서 그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나와 전화 한 일은 아예 기억에도 없는 듯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섭섭한 것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안도했습니다.
서로의 기도제목을 나누는 시간에 그 목사님이 지난달 금식기도 중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금식 중 나와 통화를 한 것입니다. 목소리에 힘이 실리지 않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순간에 그 때의 오해가 풀렸습니다.
목회자가 전화를 이렇게 받아서 어떻게 하나 하고 혼자 여러 생각을 했던 것이 떠올라 그 목사님에게 이런 오해가 있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 목사님도 그랬냐며 눈웃음으로 미안함을 표시하셨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대로, 내가 느낀 대로 판단하며 살아갑니다. 입력 된 정보 뒤편에 있는 내막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혼자 섭섭병에 걸리기도 하고 잘라내기도 하고 정죄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 조금만 애를 더 써서 상대방에게 지금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고 믿어주면 시간이 지나면서 대부분의 오해가 자연스레 풀리게 됩니다.
한 가지 오해는 또 다른 오해를 낳습니다. 나한테 섭섭한 감정이 있음에 틀림없다고 단정해 버리면 이 후의 모든 말과 행동은 그 오해를 뒷받침하는 재료가 됩니다. ‘당신이 그렇게 나와? 좋아 나도 관심 꺼버리면 돼’하면서 골이 깊어갑니다.
설령 상대방의 부족함이나 배려 없음으로 인해 감정이 상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럴수도 있지’하고 이해 해 주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편합니다.
섭섭한 감정의 노예로 붙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선입관, 편견, 오해는 정죄, 도려 냄, 무시등과 같은 원치 않는 행동을 낳게 만듭니다.
더욱이 우리는 사명을 위해 부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내 자존심과 판단이 사명을 거스르는 일을 용납해서는 안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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