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6-09-13 21:20 수정일: 26-09-13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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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윅선교주일을 맞이하여 (2026년 9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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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이은진목사
 조회 :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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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년 12월, 캐나다의 한 청년이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정규 신학을 배우지도, 목사 안수를 반지도 못한 스물 여섯의 청년, 가난한 가정 형편으로 공교육조차 제 대로 마치지 못했던 그가 가진 것이라곤 "찌그러진 통 일지라도 생명수를 전하겠다" 는 불타는 소명뿐이었습니다. 바로 '한국 침례교의 아버지' 말콤 펜윅(Malcom C. Fenwick) 선교사 입니다.
초기 선교 사역은 좌절의 연속이었습니다. 언어의 장벽, 선교회와의 갈등, 신학적 열등감, 그리고 동양인을 우월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인간적 한계까지, 그래서 그의 열정에도 불구하고 선교의 열매는 쉽게 맺히지 않았습니다. 당시 격동과 위기의 시대를 맞은 한국 사역은 몹시 어려웠습니다. 사역의 대부분은 일제 강점기에 일제의 감시 속에서 진행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원산의 한 농장에서 그의 자아를 깨뜨리셨습니다. 펜윅은 자신이 주도하러 했던 선교 방식을 내러놓고, 마침내 현지인 동역자 신명균을 만나며 선교의 위대한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서양인 선교사가 중심이 되던 시대에, 그는 토착 사역자를 양성하여 전국으로 파송하는 혁신적인 복음화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그리고1906년 기독교 교단 최초의 총회를 가졌습니다.
이후 펜윅의 삶은 한반도와 만주, 시베리아를 가로지르는 멈추지 않는 복음의 기관차가 되었습니다. 일제의 감시 속에서도 한국 성도들에게 올바른 신앙과 애국을 가르쳤고, 32년의 헌신 끝에 마침내 원산번역 『신약전셔』 를 완역하여 성도들에게 쥐어주었습니다: 1935년 72세의 나이로 원산에서 눈을 감기까지, 무려 46년 그가 뿌린 복음의 씨앗은 오늘날 한국 침례교단과 수많은 교회의 기틀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주님의 부르심 앞에 서 있습니까? 스펙도, 자격도 없다고 핑계 대던 한 청년이 하나님 손에 붙들렸을 때 한 민족의 영적 지도가 바뀌었습니다. 보잘것 없는 내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또 하나의 위대한 복음의 역사를 쓰실 것입니다. 우리도 할 수 있는 작은 일에라도 충성과 최선의 헌신을 드립시다.
캐나다에 있는 모든 한인 침례교회는 일 년에 한 번 펜윅 선교주일로 지키면서 협동선교헌금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크던 작던 모든 교회가 함께 하는 선교헌금에 사랑의 교회도 지난 8년 간 마음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드려진 헌금은 선교와 개척교회 지원, 지방회 연합사역을 위해 쓰여집니다.
매 월 셋째 주일은 목장선교 주일이지만, 일 년에 한 번은 캐나다 지방회를 위해 펜윅선교 헌금으로 드립니다. 한 주간 기도하면서 정성껏 준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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