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17-11-05 17:16 수정일: 17-11-05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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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화(定型化)의 위험 (2017년 11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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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이은진목사
 조회 : 6,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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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한국을 떠나기 전에는 거리에서 외국인을 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디를 가나 쉽게 외국인들을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특별히 많은 외국노동자들이 들어 와 도시 곳곳에 정착 해 살고 있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한국이 그만큼 발전했다는 말이겠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지 한국에 들어 와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비하하는 기사나 댓글들이 점점 늘어나고 강도도 심해집니다. 그런글을 볼 때마다 마음이 썩 좋지 않습니다. 캐나다처럼 복합문화정책을 시행하면서 모든 이주민들의 문화를 모자이크처럼 조화롭게 바라보는 시각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그들을 향한 포용과 배려의 마음을 놓아서는 안됩니다. 성경에도 보면 하나님의 마음은 언제나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외국인)에게 머무셨습니다.
외노자들의 인구가 늘어나는만큼 이들로 인한 범죄도 종종 일어납니다. 그러한 범죄기사가 실릴때마다 어김없이 달리는 댓글은 이들을 추방하라는 것입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범죄가 점점 늘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외노자들의 범죄가 늘어나는것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범죄가 늘어가는 것이고 그 많은 범죄자들 가운데 이들도 포함되어 있는것에 불과합니다. 외노자든 자국민이든, 범죄를 저지르면 모두 범죄자입니다. 그런데 유독 외노자들이 저지르는 범죄는 따로 구분해서 기사에 실리고, 이 기사를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외노자들은 잠재적 범죄자라는 잘못된 선입관을 심어줍니다. 어떤 특정 사람이나 부류를 정형화해서 틀에 가두는 것은 악한 목적을 가진 정치가나 독재자들이 즐겨쓰는 수법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결코 정형화하여 틀에 가두신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 틀을 깨셨습니다. 세리와 창녀의 친구가 되셨고, 천국이 어린아이의 것이라 하셨고, 안식일보다 사람이 우선이라고 하시며 치유를 베푸셨고, 거지 나사로를 높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모든 사람을 존중하셨으며 그 누구도 비판받거나 정죄받지 못하도록 방어막을 쳐 주셨습니다.
한국처럼 작은 땅덩이리에서 지역들을 쪼개어 이 지역은 이러이러한 곳이고 저 지역은 저러저러한 곳이라고 정형화 시킵니다. 캐나다까지 이민와서도 어느 인종은 이렇고 어느 민족은 저래서 상종할 수 없다고 틀을 만들어 버립니다. 그들을 우리 잣대대로 정형화시켜버립니다. 적어도 크리스챤이라면, 그래서는 안됩니다.
어느 한 개인을 향해서 그 누구도 자기나름의 틀을 씌워서는 안됩니다. “저 사람은 원래 저런 사람이야, 변할 수 없는 사람이야, 틀렸어” 라고 정형화시켜서는 안됩니다. 그런 사람을 회복시키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만들기 위해 예수님이 피를 흘려 주셨습니다. 더 참고 더 기다리고 더 인내해야 하는 문제이지 정형화의 틀 속에 가두어버리고 손 털어버릴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정형화시킨 그 사람의 다른 편에는 나도 가지지 못한 선한 조각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목회합니다. 하나님이 이루실 일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자주 실망하고, 안타깝고, 절망스러워도 소망을 잃지 않으려합니다. 하나님이 고치실 사람, 하나님이 이루실 교회, 하나님이 만드실 그 나라를 믿기 때문입니다. 어떤일이 있어도 내 판단대로 누구도 부정적인 모습으로 정형화시키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그 기대를 놓는 순간 목회는 아미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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