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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9-03-17 18:49 수정일: 19-03-17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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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양 (2019년 3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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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이은진목사
 조회 : 5,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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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4대 째 기독교 집안, 그것도 목회자의 가정에서 태어났고 어릴때부터 기도원을 간다든지 하면 제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해 주시는 분들마다 주의 종의 사명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해 주셔서 자연스럽게 목회자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신학교는 학부와 대학원에서 똑같이 언어(헬라어,히브리어)를 공부하고 신학과목도 겹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학부때는 주전공을 기독교 교육학으로 하고 대학원에서 신학을 전공하였습니다. 제가 성격이 조용하고 큰 소리를 내지 않으니 아버지께서 제 설교톤이나 억양을 발전시키기 위해 고등학교때 웅변학원에 들여보내기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웅변톤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신학대학에 들어갈 때 부터 대학원은 미국으로 유학가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대학시절 내 교내에서는 영어회화써클에 가입하여 활동하고, 방학마다 시내에 있는 영어학원에 다녔습니다. 이 덕분인지 미국 남침례교단 6개 신학교 중 가장 선망의 대상이던 대학원에 입학하여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전도사로 사역하기 위해서는 키타를 기본적으로 다룰 수 있어야 한다고 해서 캐나다로 이민 오기 전 서울에 있는 ‘논두렁 밭두렁’이라는 키타 학원에서 두어 달 레슨을 받았습니다. 기본코드만 겨우 잡고 주법은 하나도 배우지 못한 실력으로 사랑의교회에서 주일학교 전도사로 사역하는 몇 년간 키타로 찬양인도를 했습니다. 그 시절 우리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어릴때부터 기독교문화를 벗어난 적이 없이 자라고, 목회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목회현장을 습득하게 되고, 별 저항없이 신학교에 입학하여 공부와 사역을 쉬지 않고 해 오다가 밴쿠버로 이주하여 첫 사역을 시작한 곳이 바로 사랑의교회입니다. 사랑의교회가 개척한지 몇 개월 뒤 합류하였기 때문에 사랑의교회 25년 역사와 함께 저도 지내온 셈입니다.
주일학교 전도사, 유스부 전도사, 청년부 전도사로 사역해 왔고, 담임목사님께서 금요기도회 시간을 저에게 전체 맡겨주셔서 장년들에게도 꾸준히 말씀을 전해 왔습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계신 분들은 25년 간 제 설교를 듣고 있는 셈입니다. 여전히 겸손한 자세로 고개를 끄덕이며 설교를 경청하는 모습이 감사하고 힘이 됩니다.
목사의 크기만큼 성도들이 자란다는 말이 저는 제일 무섭습니다. 제 부족함을 너무 잘 알기 때문입니다. 착한 성도님들께 좋은 목자가 되고 싶습니다. 익숙해지지 않고,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신선한 샘물을 길어 나르는 충성 된 종이고 싶습니다. 목사의 크기가 아니라 예수님의 크기만큼 자라는 성도님들이 될 수 있도록 그 통로로만 쓰임받는 제가 된다면 더 바랄것이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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